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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로워."

 

그 말을 남편에게 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퇴직 후 하루 종일 함께 지냅니다. 그런데 하루 동안 나누는 대화는 생활에 꼭 필요한 몇 마디뿐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남편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나 역시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서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다 보면 목소리가 커지고, 결국 감정까지 상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부부는 말을 아끼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60이 넘어서야 얻은, 씁쓸하지만 소중한 지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을 줄인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속에 쌓여 우리를 조금씩 더 외롭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감정을 말하지 않는 부부

부부의 결혼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감정 표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부부는 친밀감이 깊어지고, 어려운 순간도 함께 견딜 힘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거나 불평과 비난만 반복하면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감정은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 주는 소중한 신호입니다.

"외롭다."

"섭섭하다."

"고맙다."

"기쁘다."

"속상하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배우자는 비로소 내 마음을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감정을 숨기면 상대는 내 마음을 알 수 없고, 결국 서로를 오해하게 됩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해"

저도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애교를 부리거나 사랑이 담긴 말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해."

그 말에 괜히 머쓱해졌습니다.

억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제 모습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더욱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막내가 우리 부부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해 주었기에 서툴지만 일상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나… 외로워"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용기 내어 꺼냈습니다.

"나… 외로워."

예전 같았으면 남편은 제 말을 반박하거나 다른 이야기로 돌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남편은 제 감정을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도 그래."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인 것 같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만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는 것 같아."

그 순간 저는 오랜만에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편의 외로움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많이 힘들었구나.'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 제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공감은 감정 표현에서 시작됩니다

부부는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며 살아야 합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곧 공감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감은 언제나 솔직한 감정 표현에서 시작됩니다.

그날 저녁 막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이제 아빠가 남편이라기보다 오빠 같은 존재 같아. 진짜 찐 가족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도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더 이상 경쟁하거나 이겨야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피붙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평생 알아 가는 사람

그 후 저는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서로 다른 방에서 나와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잤어?"

"오늘은 좀 어때?"

"힘들지는 않아?"

남편이 자녀 문제로 힘들다고 말하면 예전에는 "그런 부정적인 말 좀 하지 마."라고 말했던 제가 이제는 이렇게 대답하려고 합니다.

"그랬겠네."

"많이 힘들었겠다."

"그럴 만했네."

이처럼 상대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말 한마디는 해결책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는 순간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비로소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관계의 가장 높은 단계는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대상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 아닐까요?

가족은 서로 완벽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를 용서하며 함께 회복되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서로의 마음을 알아 가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남편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마음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어쩌면 부부의 행복은 거창한 이벤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 잤어?"

"괜찮아?"

"많이 힘들었겠다."

이처럼 짧지만 진심이 담긴 감정의 언어가 하루하루 쌓일 때 부부의 사랑도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도 우리 부부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용서를 선택하고, 공감을 선택하고, 사랑을 선택하려 합니다.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언어가 쌓일 때, 부부의 사랑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위에 세워진 가정은 어떤 폭풍 속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집이 되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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