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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 어느 늦가을 저녁이었다.

남편은 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걸어 잠들어 있던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귀찮은 마음으로 나가자 남편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했다.

“잘 들어 봐. 마치 오페라의 대합창 같지 않아? 사삭, 사사삭, 사사사사삭.”

그때의 나는 졸음만 쏟아졌을 뿐 남편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졸려 죽겠는데 이 밤중에 왜 사람을 불러내는 거야.’

투덜거렸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장면은 참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낙엽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오페라의 대합창처럼 들었던 남편의 감성이 이제야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회복되자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에서 남편과의 갈등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부부 사이에서 겪었던 일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마음 한편이 후련해지는 경험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유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가 보다.

신기한 것은 마음이 회복될수록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남편의 장점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은 남편의 단점이 너무 크게 보여 장점들이 모두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마음속의 미움과 상처가 조금씩 가라앉자, 오랫동안 숨어 있던 장점들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점이라고만 여겼던 모습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꼼꼼했던 사람이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숫자 감각이 뛰어나고 매우 꼼꼼한 사람이었다. 계획을 세우면 끝까지 책임감 있게 실천했고, 작은 오차도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

퇴직 후 한동안 상가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건물을 자신의 집처럼 성실하게 관리했다. 임대한 상가 안까지 직접 들어가 청소를 도와주었고, 전구를 갈아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이런 건물주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처럼 여기다 보니 마음고생도 컸다. 2년 만에 체중이 6kg이나 빠질 정도로 지쳤고, 결국 상가를 정리하게 되었다.

우리 집을 관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 안은 늘 깔끔하게 유지되었고, 덕분에 이사할 때마다 집이 좋은 가격에 비교적 빨리 팔리곤 했다.

예전에는 남편의 꼼꼼함이 나를 힘들게 하는 성격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안에 책임감과 성실함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소함 속에는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었다

남편은 누구보다 검소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고, 근검절약을 생활화했다. 그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성실함과 절약 덕분에 우리 가정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돈을 아끼는 성향이 때로는 가족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절약 속에는 가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남편은 무엇이든 직접 해결하려고 했다.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주었고,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직접 아이디어를 내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서른다섯 살부터 시작한 나의 염색도 지금까지 남편이 책임지고 있다. 미용실에 가면 더 예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남편이 정성껏 염색해 주는 시간에는 절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말과 선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내의 머리에 정성스럽게 염색약을 발라 주는 일이 사랑의 표현이었다.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

남편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향한 사랑도 한결같았다.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는 주말마다 모셔 와 목욕을 시켜 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농사짓는 형님들이 힘들어할 때면 식사를 대접하고 위로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남편의 효심을 존경했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무보수 봉사를 하기도 했다.

가정에서는 내가 아프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구보다 세심하게 돌보아 주었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임을 다하고,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해내며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랑의 언어를 조금씩 알아듣게 되었다.

같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지금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남편은 음악 전공자가 아니었지만 교회에서 찬양대를 지휘했다. 나는 늘 찬양대원으로 함께 섰다.

남편의 지휘를 따라 하나님을 찬양할 때면 참 멋있어 보였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어깨도 덩달아 으쓱해졌다.

돌아보면 남편에게도 부족한 모습은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큼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술에 취한 날에도 식사 전에는 반드시 기도했고, 때로는 찬양을 부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주일만큼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몸소 보여 주었다.

나는 종종 하나님께서 남편을 꽉 붙들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이 되고 사회인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품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신앙 안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기에 인생의 큰 폭풍을 지나면서도 완전히 길을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헌금 문제를 비롯해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서로 생각이 달라 갈등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마저 서로 다른 기질과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였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잔소리 속에 담긴 사랑도 보였다

예전에는 남편의 잔소리만 들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잔소리 속에 담겨 있던 사랑도 조금씩 느껴졌다.

물론 표현이 서툴렀고, 때로는 나와 아이들을 숨 막히게 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생긴 상처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잘못된 표현과 그 안에 담긴 의도는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언제나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마음 안에 가족을 지키고 책임지려는 사랑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는 여전히 미움과 사랑이 함께 존재했다.

애증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회복된다는 것은 아팠던 기억을 모두 없애는 일은 아니었다. 상처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그 사람 안에 함께 존재했던 다른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사랑할 능력이 조금씩 커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사랑은 점점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을 조금씩 가까이 바라보게 되는 나이가 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엇인들 사랑하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나이 들어가는 일이 참 좋았다.

사랑할 능력이 조금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배우자가 나를 만족시켜 주어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마음이 회복되고 시선이 달라질 때, 사랑도 다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남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훈련을 하려고 한다.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운함이 다시 올라오고, 오래된 상처가 마음을 가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랑으로 바라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도 그런 마음으로 썼다.

남편을 원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문장을 쓰고 또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혹시 이 글이 우리처럼 갈등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단 한 쌍의 부부에게라도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랑은 배우자가 완벽해질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이 회복될 때 다시 자라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남편 안에서 보고 계셨던 아름다움을 이제야 나도 조금씩 발견하고 있었다.

늦가을 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소리를 오페라의 대합창처럼 들었던 남편의 마음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고백했다.

“이제는 사랑합니다.

나 자신도,

남편도,

그리고 여전히 사랑합니다.

나의 자녀들을,

나의 주님을.”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사랑은 상대를 완벽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은혜였다.

나는 오늘도 그 사랑을 함께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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