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부부를 변화시킨 단 한마디, "정말 미안하다."

퇴직 후의 삶은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가족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하루하루는 단조롭게 반복되었다. 무엇보다 오래된 상처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 내 마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몸보다 마음가 먼저 지쳐 갔고, 마음의 평안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남편과 당시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던 딸이 심리상담을 권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상담을 시작했고, 남편도 부부상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를 이해해 보자는 마음으로 TCI 기질 및 성격 검사에 기꺼이 참여해 주었다.
상담사는 남편과 나, 그리고 자녀들의 검사 결과를 차례로 설명해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에게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검사 결과지를 집에서 다시 읽어 보던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동안 나는 남편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늘 이렇게 말했다.
"그게 왜 그렇게 힘든 일이야?"
남편에게는 남편의 이유가 있었고, 나에게는 나의 이유가 있었다.
남편은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남편이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같은 갈등을 반복했다.
남편도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
마치 출구 없는 미로를 맴도는 것처럼 같은 자리만 계속 돌고 있었다.

평생 처음 들은 사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자녀 문제와 과거의 상처 때문에 깊은 절망 속을 헤매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다.정말 내가 많이 미안하다.사람이 그렇게 많이 다른 줄 정말 몰랐다.그렇게 당신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나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 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렇게 오래 울고, 싸우고, 견디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한없이 울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사과 한마디가 과거를 모두 없애 준 것은 아니었다.
현실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진심 어린 사과는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 관계를 다시 세우는 첫 번째 초석이 되었다.

이해는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을 바꾸는 것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녀 문제도, 내 마음의 상처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남편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 역시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 주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은 이럴 때 더 힘든 사람이니까."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배려의 언어가 우리의 일상 속에 조금씩 자리 잡았다.
나 역시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전혀 다른 기질과 성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해란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시선을 바꾸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는 작은 에덴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나는 비로소 우리 가정에도 행복이라는 희망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오래전 포기했던 행복한 가정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두신 곳은 에덴동산이었다.
에덴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곳이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평안한 곳이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관계가 살아날 때 잃어버렸던 에덴은 조금씩 회복된다.
우리 가정은 아직 완전한 에덴은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다시 손을 내미는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 위에 새로운 초석을 놓아 가신다.
오늘도 나는 믿는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다시 세워 가시는 작은 에덴이다.
그리고 그 에덴의 첫 번째 초석은,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가정은 단순히 함께 사는 공간이 아니다.
가정은 서로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지켜 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족을 조금씩 에덴으로 회복시켜 가신다.
오늘도 그 회복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미안하다."
그리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라는 작은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6/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